- 전시
- 겹
- 구분
- 개인전
- 장소
- 빈칸을지로, 서울
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어떤 이미지를 덧붙일지 생각한다. 주제는 있지만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드로잉의 과정은 삶의 모습을 닮았고 내가 형성되는 과정과 닮았다. 이미 일어난 일이, 지금의 몸짓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어떤 우연을 타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도착한 무엇인가가 다음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이미지 위에 이미지가 쌓여 어떤 것은 덮어버리고, 어떤 것은 뒤섞이고, 어떤 것은 겹쳐진다. 사람 안의 서로 다른 면들을 레이어에 비유한다면, 이 레이어들은 나의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들은 끈적거리고, 투과되고, 비치고, 떠 있고, 어긋나고, 들러붙고, 뒤섞이고, 서로 침범하면서 서로를 밀어낼 것이다. 이 레이어들 역시 범주나 집합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중적인 상태에 대한 관심은, 나의 모순들을 통제하고 융합시키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산발적인 나를 받아들이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몸이 아닌, 때로는 끊어지고 때로는 이어지며 자세히 보아야 들여다보이는 흔적들이 남아 있는 몸을 그려, 여러 층이 겹쳐진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레이어를 이루는 요소들, 혹은 어떤 레이어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존재들을 먹고, 숨쉬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점차 작품 속의 레이어에 인체가 아닌 다른 형상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해가고 덧붙여가는 드로잉은 과정을, 흔적을, 레이어를 보여준다. 이런 그림을 통해 여러 층이 겹쳐져 만들어낸 정체성에 존재하는 미묘한 틈들과, 여러 겹의 레이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고 완전히 분리될 수 없지만, 완전히 겹쳐질 수도 없는 그런 관계에 대해.